작품설명 |
(주) 더북컴퍼니는 메종, 마리끌레르, 싱글즈 등 패션지를 발간하는 국내 유명 잡지사이다. 2004년 창사 이래로 가파를 성장을 거듭하면서 논현동 일대의 여러 건물을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던 중 2014년 서울 역삼동에 사옥을 짓기 위하여 네 곳의 건축사무소에 지명현상설계 참여를 요청하였다.
'새로운 시작', '시작으로서의 건물은 어떤 인상을 만들어 내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은 '모노리스(monolith, 라틴어로 하나의 또는 고립된 바위)' 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투명하거나 검은, 절대적 비례의 이질적인 볼륨을 연상시키는 모노리스는 진화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미싱 링크를 연결해주는 단초이자 일상 속의 신선한 변화,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내는 잠재적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이다.
완벽한 비례의 볼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응축된 에너지, 이를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고 하나의 재료를 사용한 단일 볼륨에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하였다. 여러 계획안을 거쳐 최종적으로 콘크리트 표면 위에 자유롭게 형상을 만들 수 있고 여러 질감의 표현이 가능한 GFRC(Glass Fiber Reinforced Concrete)를 주요 외장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태초의 미디어,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모스(Morse) 부호를 사용하여 GFRC 패널에 패턴을 만들고 그 패턴을 변형하여 입면을 디자인하였는데, 빛의 방향에 따라 GFRC 패널에 각인된 모스부호 그림자의 깊이가 변화하고, 표면에 새겨진 나뭇결 문양에 의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부한 질감이 표현된다. 멀리서는 인식되지 않는 나뭇결 문양이 가까이서 건축물을 대할 때 또 다른 인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랬다.
콘크리트에 검은색 안료를 섞어서 제작된 GFRC 패널은 마치 짙은 먹을 입힌 듯한 느낌을 주는데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는 더 짙은 회색으로 보이고 맑은 날은 푸르스름한 회색, 노을빛을 담아내는 붉은 톤의 회색처럼 하늘빛에 따라서 표면의 질감과 색상이 다양하게 변화한다. 폭 1.2미터, 높이 3.6미터의 기본모듈로 만들어진 패널들로 전체 볼륨을 만들고 그 중 일부를 불규칙적으로 개방하여 의도적으로 입면에서 창의 패턴이 읽히지 않도록 하였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전체로서의 하나의 볼륨 속에 응축된 에너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자유로움, 투명함, 개방감을 동시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동시에 품은 볼륨, 그 속에서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연속적인 공간경험을 통하여 변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랬다. 짙은 회색 톤의 건물을 바라보며 주출입구에 들어서면 밝게 빛나는 흰색의 광천장과 옅은 회색톤의 노출콘크리트 벽면을 따라 엘리베이터 홀로 안내되는데 외부공간에서부터 이어지는 짙은 회색의 바닥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준층에 도착하면 밝은 색으로 바뀌면서 공간적 경계를 넘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건물 외관의 짙고 육중한 느낌과는 반대되는 전체적으로 밝은 무채색 계열의 백색 도장과 노출콘크리트를 주 재료로 사용한 실내공간으로 들어가면 크고 시원하게 열려진 창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 전까지 머물러 있었던 색색의 도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연속적인 움직임들 속에 숨겨진 미세한 톤의 차이와 바닥 재료의 변화로 각 영역들의 경계가 만들어지고 또 사라지며 연결된다.
기준층의 층고와 레이아웃을 결정하는 것은 전체 볼륨의 비례와 입면의 디자인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였다. 대지가 봉은사로의 남측에 위치하여 건물의 정면이 북향으로 놓이는 상황에서 주요 수직 동선을 남측에 위치시키고 북측 및 동측 방향으로 개방된 입면을 갖도록 기준층 레이아웃을 검토하였는데 사옥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에 도로방향으로 정면성을 갖는 것이 중요했고 업무공간에 직사광선을 받는 것 보다는 항상 일정한 광량의 북측 하늘빛을 받아들이는 것이 개방감을 높이면서도 작업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엘리베이터, 계단실, 화장실, 창고, 각종 샤프트, 실외기실 등의 모든 서비스 영역을 남측면에 집중시키고 그 반대편으로 깨끗한 직사각형의 업무영역을 배치하여 기능적인 사무실 레이아웃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바닥에는 친환경 코르크 마루재를 사용하여 보행이 편안하고 소음이 저감되도록 하였으며 모든 층에 열교환기 설비를 설치하여 창문을 열지 않더라도 항상 신선한 공기가 순환되도록 하였다.
지하 1층~지상 2층은 일반 임대공간, 지상 3층~4층에 로비와 자료실, 지상 12층~13층은 회의실 영역, 지하 2층은 6미터의 높은 층고를 가진 다목적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특별한 인테리어 자재나 장식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외부로 열린 창의 개방감, 공간의 변화와 높이, 바닥 재료의 변화 등을 활용하여 각각의 영역의 특성에 따라 개성있는 공간감을 구현할 수 있었다.
옥상에는 각진 건물의 형상과 대비되는 유선형의 자유곡선으로 에워싼 정원을 계획하였다. 북측의 남산타워, 동측의 선릉공원, 남측의 소필지 주거지역과 르네상스 호텔 등 서울의 풍경을 담아내는 커다란 창들 사이로 각종 야외행사를 수용할 수 있는 계단식 모임공간과 서비스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개화의 시기가 다른 수목들을 세심하게 배치하여 계절에 따른 색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처음 의도한 대로 정원이 완성되었을 때 눈앞에 펼쳐질 풍경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