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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기념관

위 치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471
용 도 문화 및 집회시설 
대지면적 - 지상층수 2
건축면적 1185 m2 지하층수 2
건폐율 -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연면적 3757 m2 용적율 -
외부마감 이중U형유리,THK28 복층유리,노출콘크리트 내부마감 화산석,폴리카보네이트,석고보드위수성페인트
작품설명 상징과 해석
가로 35미터, 세로 49미터의 주어진 직사각형 대지 안의 흙을 건물의 체적만큼 들어내고, 12개의 메스로 분절해 같은 자리에 다시 앉혔다. '12'라는 숫자는 안중근의사의 후광에 가려진 단지동맹 12인을 의미하며, 1909년 자신의 무명지(넷째 손가락)를 끊고 대한독립을 맹세했던 그들 속에서 '안중근'의사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기념과 의식 그리고 공간
건물은 남산의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했다. 이곳은 기념을 위한 의식(ritual)으로 주변보다 한 단 낮은 선큰 레벨로의 진입에서 시작한다. 관람객은 진입로 램프를 따라 걸으며 경계의 못에서 흘러내리는 벽천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어록을 접하게 된다. 건물 반대편의 주출입구까지의 조용하고 긴 호흡의 여정은 현실과 과거의 전이공간이자 매개공간이 되며 기념관의 외부 전시공간이 된다. 건물은 균질한 반투명 재질의 외피를 가졌으며, 내부의 기능에 따라 외부와 열리고 닫힘이 다양하게 변화한다. 또한, 어둡고 극적인 공간연출보다는 12개의 박스 속의 밝고 다양한 내부공간을 만들어 내며, 건물 전면에 비워진 기념마당은 건물의 양면기능과 함께하는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작동할 것이다.

■ 건축가 인터뷰(2012.07.17)

[설계의도]
남산공원이라는 지리적 이점은 동시에 많은 조건을 덧붙였다. 건물의 높이를 12m로 제한했고 남산르네상스 계획에 의해 더욱 많은 제제를 받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발주처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3개 층에 걸쳐 수직으로 전시시설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내부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해 지하1층부터 2층까지 유연한 동선흐름을 만들었고 2층의 마지막 전시실을 관람한 후에 멀리 한강까지 조망이 가능한 남측 계단실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전체 전시동선 상에서 유일하게 중복되는 부분은 참배홀이며 관람객이 시작과 끝에 안의사의 영정을 볼 수 있도록 한 건축적 의도였다.
기념관의 유지 및 관리를 위한 집회기능은 주 진입부터 전시기능과 분리된다. 건물의 측면을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계획했으며, 지하1층까지 연결되는 선큰데크를 통해 내부 집회홀과 이어지며 계단을 통해 관리 및 사무공간과 인접한다. 균질한 외관을 유지하면서도 자연광을 유입시키기 위해 이중U형유리와 600mm 간격을 두고 폴리카보네이트 내장재를 설치하였다. 외부에서 필터링되어 들어온 은은한 빛은 집회실 앞 홀을 항상 밝혀준다.
이중U형 유리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남산의 환경과 건물의 형태였다. 극도로 절제된 건물의 조형에 석재나 금속성 외장재가 덮히면 더욱 차갑고 위압적인 느낌을 줄 것이며 투명한 커튼월은 건물의 기능과도 맞지 않으며 상징적인 외관과 유리될 수밖에 없다.
유글래스의 반투명한 질감은 주변 고목의 푸르름을 머금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표출한다. 12개의 기둥 조형을 강조하기 위해 박스의 사이 공간에는 투명한 전창을 끼웠고, 내부에서 작은 휴게공간으로 사용해 관람객들이 남산의 절경을 즐길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반투명 외피는 건물을 비치는 조명방식이 아니라 건물에서 발산하는 경관 조명 계획을 가능하게 했고 기념관의 상징성이 야간에도 유지될 수 있게 되었다. 건축물 전체가 좀 더 균질한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 유글래스 이중 벽 사이에 필름지를 붙여 빛의 반사를 배가시켰다.

[작품배경]
기존의 기념관이 노후 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사)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대통령의 지시로 새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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