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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_시립미술관 /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15번지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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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집적된 시간

 

  학창시절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연인이 함께 이 길을 걸으면 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후, 여러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물어보면 대부분 들어본 이야기라고 하면서도 누구로부터 어떻게 유래된 이야기인지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의 서울관광을 안내하거나 그 곳에 다시 갈 일이 있을 때는 한 번쯤 떠오르는 이야기다. 구전되는 이 이야기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나즈막한 돌담길을 걸으며 바쁜 도심 생활 속에서 단지 모퉁이 하나 돌았을 뿐인데 갑작스레 느껴지는 여유로움을 즐기며 떠올리는 작은 이야깃거리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장소와 연계된 추억거리는 있다. 그 곳에 가면 다시 생각나는 예전의 일들이 있고 이런 작은 기억의 조각들은 그 곳을 개인화(personalization) 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그 곳을 특별한 장소로 기억하게 해준다.

 

  이야기가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 개인에게 특별하게 남을 수 있는 것은 그곳을 걸으며 만들었던 기억에는 신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궁의 돌담은 보행로의 시각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 구체적(tangible) 기억을 발생시켜 준다. 계절의 변화를 시각과 후각을 통해 느끼고 함께 걸은 사람의 손의 온기를 통한 감성적 교류가 있었기에 정체불명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어지는 것이다. 돌담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으며 직선이 아니어서 좋다. 끝이 보이는 길은 목적지를 향해 가도록 만들지만 돌고 돌아 가는 길은 길을 따라 가도록 해 준다. 세상의 일이 한 치 앞을 볼 수 없듯이 이 길 또한 그 앞을 알지 못하고 걷는 것이다. 특히나 도심 한가운데 있어 더 좋다. 시각적 대비는 또 다른 감성적 대비를 불러일으킨다. 멀찍이 보이는 고층건물들은 현대의 서울을 움직이게 하지만 덕수궁 돌담길을 걸을 때는 과거의 정취를 느껴보게 한다. 덕수궁과 정동 일대는 문화 공간이 있어 사색의 여유로움을 제공하고 중간중간 모이는 근대 건축물은 역사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며 집적된 시간이 있는 덕수궁 돌담길은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기억을 만드는 아름다운 공간임에 틀림이 없다.

 

이혜선_이화여자대학교 교수


 

 

 

 

 

 

 

  

 길과 주변의 맥락

 

  떠남과 돌아옴의 매개인 길은 그 자체로도 낭만적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도시의 길들은 빠름과 복잡함의 대명사로, 또 이동공간으로만 전락해버린 곳이 적지 않다. 그런 와중에 서울 도심의 길 중에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곳이라 할 수 있는 덕수궁 돌담길이 1990년대 말 “보행자 중심의 녹화거리”로 새롭게 태어났다.

 

  교통 흐름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단장된 이곳은 ‘보차공존도로 및 푸르름이 가득한 가로공간인 녹도’의 개념을 적용한 국내 최초 사례로서 의미가 크다. 교통량을 억제하고, 보행자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차량의 주행속도를 저감시키기 위해 굴곡형 차선, 요철 포장, 미니 로터리, 볼라드 등의 가로 시설물이 도입되었는데, 무엇보다 보행의 쾌적성 확보가 두드러져 보인다.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과 같은 이 길이 갖고 있는 주변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이곳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마침 답사를 위해 찾아갔을 때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수문장 교대식이 거행되고 있어, 평일이었음에도 적지 않은 시민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이 이 일대를 찾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좋은 공간환경을 위한 필요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조성 주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률적인 발주, 설계, 시공, 관리 이외에 능동적인 주민 참여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고, 환경적 측면에서 보자면 지속가능성, 생태적 건강성, 자원의 순환 등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은 이런 요소들 이외에 잠재되어 있는 주변 맥락이 좋은 공간 환경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주변의 역사적 맥락을 표현한 타일 포장 등의 소소한 제스처가 눈에 띄고, 보행자거리 조성 사업 후 2002년도에 이전한 서울시립미술관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점 등을 염두에 둘 때, 좋은 공간환경을 위해서는 주변 맥락과의 연계가 중요함을 엿볼 수 있다.

  남기준_월간 환경과조경 편집장

 

 

 

 

 

 

다양함이 있는 길

 

  정동길은 역사적 의미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며, 시간에 따라 가로구간에 따라 변화가 많은 곳이다. 출근(통학)시간, 평일오전, 점심시간, 평일오후, 그리고 토, 일요일 때의 정동길의 가로모습은 무척 다르다. 이는 가로의 구성요소인 가로수, 보도, 담장, 상점 등 셋팅된 공간에서 사람으로 인해 연출하는 가로공간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로와 면하는 저층부를 보면 묘한 대비가 이루는 가로의 분위기가 걷고 싶고 찾아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부분의 가로구간이 단조롭지 않다. 한쪽 면이 돌담이고 다른 면은 쇼윈도우이다. 또 한쪽 면이 공연장이고 다른 면은 작은 오픈스페이스가 보인다. 이러한 대비는 짧지 않은 정동길을 지루하지 않게 지나가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다양한 컨텐츠,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대비를 느낄 수 있는 가로는 다양한 입면을 시험하는 듯 하다.

 

  이는 덕수궁, 배재학당, 구세군회관, 정동교회 등 다양한 역사문화관련 시설과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극장 같은 공연관람문화시설로 다양한 컨텐츠가 있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사람, 맛집을 찾아서, 휴식을 취하러 오는 사람 등이 시간대별로 다른 목적에서 지나가고 쉬곤 한다.

 

  다양한 컨텐츠(상업, 문화, 역사, 학교, 오피스 등), 다양한 목적의 방문자, 그리고 대비를 느낄 수 있는 가로입면으로 좋은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오히려 공공에서 의도한 도시갤러리프로젝트의 작품은 점차 과도하고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이성창 부연구위원_서울시정개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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