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정지된 자그마한 마을
2009년 서울의 모습은 필자가 태어난 1970년도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예전의 모습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낡고 미관상 안 좋은 건물들은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정비되었고 동네마다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던 작은 정원이라도 딸린 단독주택들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 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사는 주변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보기 좋고 편리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를 바랐던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21세기의 첨단 건축물들이 도시의 틀을 잡아가고 새롭게 구획이 정리되는가 하면 인구가 증가하는 만큼 주택과 차량의 수도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증가 하였습니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 가장 그리워서 소망하는 한 가지가 생겼습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며, 단독주택, 잔디가 깔린 정원 그리고 가을이 되면 마당 가득 수북하게 낙엽을 떨구는 나무들... 예전에는 왜 그런 것들이 귀찮고 지저분하게 느껴졌던지요... 그리고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고 웃풍이 없는 아파트가 왜 그리 부러웠던지요. 단순히 옛것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물로 뒤 덥히는 내 고향 서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자꾸만 커져 갑니다. 인공적인 공원과 구조물들은 자연의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어진지 오래구요. 그런 도시가 삭막해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통되는 향수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편리한 도시생활도 좋지만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의 일부가 되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빽빽한 건물들 속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 것이 내 나이 바로 40의 일입니다. 그래서 정착하게 된 곳이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입니다. 어려서 몇 번 가본 기억이 있는 동네인데 그때는 그렇게 특별한 기억도 좋은 인상도 없던 평범한 동네였습니다.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시점이 나이와 마음상태 그리고 현재 나의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차로 휙-하고 지나쳤던 곳이었거니와 언덕이 높아 쉽게 오르내리게 생긴 동네가 아니라 살기에 많이 불편해 보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런 동네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보니 참으로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네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청와대 근처라 위치상 특별관리가 될 수밖에 없는 곳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제외 한다면 서울에 이런 동네가 아직까지 존재 한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정도로 주거환경으로는 최상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서울 속의 휴식공간과 색다른 곳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곳도 더 이상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주거지역이 작은 관광지역 또는 볼거리장소로 오해되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상업지역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곳임에도 보는 이에 따라 도로라든지, 차량의 속도, 보행자나 관광객을 고려한 인도의 넓이 등에 대해 저의 시각과 다르게 판단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 조금은 보충 설명도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의 용도에 따라 주변 환경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냐’ 라는 주제에 대해 이견(異見)은 없지만 공간의 용도가 정확이 무엇이냐에 대한 바른 이해역시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부암동 일대는 주민들이 생활하며 걷고 통행하기에 커다란 불편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 또는 주변 환경과 어울려 바트지 않게 자리 잡은 나지막한 집들, 중간 중간 공터에서는 고추며 상추며 각종 채소들이 자랍니다. 빽빽하지 않은 주차 공간만으로도 이웃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위 층 아이가 쿵쾅거리는 소리에 바쁘신 경찰님들 부를 일도 없을 거구요. 그래서 부암동 주민 사람들은 서울사란들 같지 않게 얼굴이 편안해 보이나 봅니다.
서울 속의 ‘시간이 정지된 자그마한 마을 부암동’, 그래서 ‘부암동은 더 획일화 되어가고 밀집되어가는 서울 도심 속에서 오래도록 소중히 보존되어야할 좋은 공간이 아닐까’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노홍석_팬엔터테인먼트 PD
긴 시간의 맛깔스러운 부암동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았어도 부암동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부암동은 아주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쳐버릴 만큼이나 일상적인 풍경을 지니고 있다. 마치 서울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언덕 위의 무질서, 무계획적인 달동네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이러한 장소가 우리에게 어떠한 매력이 있는 것인가?
우리는 흔히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 깊은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대도시의 찬란한 문화유산, 지방도시의 그림과 같은 전원풍경이나 이색적인 휴양지,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관광객과 다채로운 축제 및 전시 등.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이 가능한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부암동이 유럽도시들의 화려하고 이색적인 매력과 비교되는 대상은 아니다.
부침바위가 있었던 사실에서 유래한 부암(付岩)이란 명칭이 암시하듯이, 인왕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여 아름다운 전경으로 유명한 부암동에서 자연이란 매우 중요한 특징적 요소이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복잡한 도심을 떠나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을 걷고 싶으실 때 있으시죠? 오늘 소개해드릴 곳은 한적하고 조용해서 연인과 걷기 좋은 마을, 예쁜 카페와 일반 가정집이지만, 예쁜 건물이 많아 사진 찍기 좋은 곳인 부암동을 소개하고자 합니다.”(http://blog.naver.com/kissphoto) 등과 같은 글귀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만일 유럽도시들과 다른 매력을 부암동에서 느꼈다면, 아마도 대도시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두드러지는 전원풍경을 가진 점에서 일 것이다. 평지에 강을 중심으로 문화가 축척된 유럽대도시와 산으로 에워싸인 장소에서의 대도시 서울은 근본적인 다른 도시구조를 지니고 있다.
현장방문은 부암동에 살고 있으면서 좋은 공간으로 발제한 분과 함께 이루어졌다. 부암동은 도심에 위치하지만 지하철에서 많이 떨어져 있음으로 대중교통보다는 대부분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언덕길에 차들도 빨리 달리고 인도도 좁아 첫인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약속장소는 마을 어귀의 ‘클럽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으로 평범한 3층 벽돌건물이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커피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격이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수제커피, 수제과자, 여기저기의 감각적인 소품들의 이색적인 분위기가 행복한 커피한잔을 마시게 하였다.
매우 가파른 골목길에 낡은 단층 기와집, 아주 평범한 2층 주택, 최근에 지은 개성있는 현대건물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혼재되어 자연스러운 도시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도시계획 하에 일시에 형성되었기보다는 어떤 계기로 또는 필요에 의해 생기고 없어져 만들어진 풍경이다. 구불구불한 길에 때로는 텃밭이 있고 웅장하지만 불법의 건축물(?), 얼마 전 화제의 TV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에 나왔던 산모퉁이 카페 등 이들 모두가 제각기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담아서 예기치 못한 공간을 제공한다. 더 올라가면 가재도 잡을 수 있는 계곡이 있다고 하였으나 가보지는 못하고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만두집에서 식사를 하며 주변의 자연풍경을 한껏 만끽하였고, 다시금 부암동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심 속의 전원이라고 할까, 도시와 전원이 구별되는 경향을 가진 유럽도시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그리고 무질서와 질서 간의 절묘한 공존, 거기에 각종 애호가들이 선호할 풍미가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좋은 공간은 서로 비교되기보다는 각자가 지닌 환경에서 어떠한 맛이 어떻게 축척되었는가에 달린 것 같다.
백승만_공간그룹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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